나는 지금도 네가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2014), p.99)

『소년이 온다』에는 ‘동호’라는 소년을 중심으로 5월의 광주를 온몸으로 견뎌낸 사람들이 그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내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동호와 정대, 정미’와는 달리 살아남았지만, 그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간다. 끔찍한 폭력의 기억, 죽은 사람들에 대한 슬픔,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이 그들의 현재의 삶을 짓누르고, 그들의 일부는 영원히 지금이 아니라 그 순간에 남겨져 있다. 그들은 살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나아가지만, 부서져 버린 그들의 일부가 여전히 그 시간을 헤매고 있다.

그런데 경험하지 않은 일을 내가 어떻게 작업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소년이 온다』를 읽고 시작한 이번 작업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하지만 80년 5월의 광주를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경유하는 작업이라면 5월의 광주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시각적인 언어로 풀어나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이 그랬듯이 단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잊지 않는 것뿐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엄마가 집 앞 골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일이 흔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엄마가 맞이해준다는 기쁨이 컸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골목에는 엄마 말고도 다른 어른들이 집 앞에 나와 서성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그러던 순간에 어떤 젊은 남자가 갑자기 “형!”하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얇은 반바지와 러닝셔츠 바람에 맨발로 언덕을 달려 내려왔다. 그 뒤로는 경찰들이 그를 쫓아 엉거주춤 뒤따르고 있었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 남자를 쳐다봤다. 엄마 손을 잡고 바라본 남자의 얼굴에서 어쩐지 그는 그 순간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시간과 장소를 헤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절박하게 ‘형’이라는 사람을 부르는 그 남자를 다들 어쩌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그 남자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몰랐고, 그 이후로도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남자의 얼굴, 나와 같은 시공간에 있었으면서도 전혀 다른 곳을 헤매던 그 얼굴을 때때로 떠올렸다.

유학 초기에 친구와 함께 베를린의 동물원에 갔다. 여러 동물을 구경하다가 낯선 비명을 들었다. 소리는 새 우리에서 났다. 커다란 새 우리 꼭대기에 새가 한 마리 거꾸로 매달려있었고, 계속해서 찢어질 것 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새가 지르는 소리 같지 않아 소름이 끼쳤다. 내 주변 사람들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새를 보면서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 그 새를 바라보다가 어렸을 때 봤던 그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새는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갇혀있었고, 어떤 시간 속에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그 동물원 안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같은 우리 속의 다른 새들과도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다. 그때 바라본 것은 한 마리의 새였지만, 타자의 고통을 단지 외부인으로서 바라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그 순간만큼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다.

영상매체로 작업을 하다 보면, 이 매체가 회화나 조각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순간을, 우리 눈으로는 감지하지 못하는 순간을 잡아낼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평소에는 주변 환경과 여러 가지 감각적인 경험이 뒤섞여서 미처 인식하지 못한 것을 촬영 이후에 편집하면서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발견한 장면들을 조합하면 머릿속에만 있던 어떤 감정과 기억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이미지로 구체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미지들은 카메라를 통해서 촬영한 것만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기억 속의 어떤 이미지는 재현이 불가능했다. 특히나 어릴 때 봤던 그 남자의 얼굴이 그랬다. 그의 얼굴을 표현하기 위해서 기억 속의 얼굴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다. 결국 실패하고 말았지만, 그 경험은 이후에 손으로 그려서 이미지가 움직이게 만드는 작업을 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나는 지금도 네가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는 줄거리가 있는 애니메이션 필름이라기보다 손으로 그린 움직이는 이미지에 가깝다. 나는 80년 5월의 광주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가까운 사람 중에 이 일과 관련된 사람도 없다. 5월의 광주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책과 영화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한 것이 전부다. 그런 내가 아무리 「소년이 온다」를 거치더라도 이와 관련된 내용을 현실에 존재하는 이미지를 사용해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미지로 나타내는 것보다는 책을 읽고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면서 서서히 생겨난 감정과 머릿속의 형상을 종이 위에 묘사하면서 서서히 구체화하는 과정을 겪는 것이 내가 5월의 광주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드러내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봤던 그 남자도, 동물원에서 봤던 새도, 다양한 폭력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서도, 그리고 전쟁으로 고향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친할머니에게서도 비슷하게 보이는 얼굴이 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순간에도 문득 완전히 다른 곳, 다른 시간을 바라보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때 그들의 일부분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상처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 같은 때에 문득 되돌아와 다시 그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그 사람을 끌고 가는 그것은 어딘가에서 현실에서는 할 수 없었던 애도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24

analogue and digital Animaition, 4K, black and white, no s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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